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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 이야기 꿈꾸는 자들의 나라 - 교육강국 : 드림 유어 드림, 그들의 전통과 현실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다. 


미국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는 미국 곳곳에 있는 명문대학교들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며 어릴 때 '하버드' 지우개나 '옥스포드' 노트 한 번 안써본 사람 없을 정도로 우리는 해외 명문대에 대한 인식을 어릴 때 부터 갖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건 아니라 전세계의 대부분의 학생이 유학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미국일거다.


미국을 가기 전에는 아예 미국 대학을 기점으로 루트를 짜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미국의 대학을 가보고자 하는 생각이 매우 컸다.


가자마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내려서 샌프란시스코대학교를 시작으로 UC버클리, 스탠포드, 먼로컬리지, 실리콘밸리 커뮤니티컬리지, UCLA, 칼텍, 캘리포니아 아트스쿨, UC Irvine, Pomona college collegiates, 콜롬비아대, 하버드, MIT, 페퍼다인대 등 수많은 미국의 대학교를 방문해보고 그 학교들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었다. 


어느나라나 젊은이들이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는 곳이 대학교가 아닌가. 정말 미국의 대학교는 학교마다의 분위기도 다르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우리가 아는 유명한 대학외에도 정말 많은 대학들이 훌륭한 수준의 교수진과 프로그램들로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양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어느 대학이 좋고 나쁘고(물론 아이비리그나 서부의 일부 사립대는 유명하지만)를 잘 따지지 않고 얼마나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고 학생 스스로가 우수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가를  교육하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부러웠었다. 왜 미국으로 대학을 가라고 그렇게들 했는지 가보고 나서야 다 느낄 수 있었다.


어느나라든지 선진국이 되려면 교육이 강해야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지금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높은 교육열과 교육 시스템을 통한 인재양성이 기본이 되었다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서 오랜 시간 유학을 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학교는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어찌보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더 나은 사람들을 선별하기 위한 일종의 필터링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중국은 사실 우리나라처럼 명문대를 들어가도 우러러보거나 하는 문화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이미 선진국이었던 미국이 지금처럼 교육강국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하였고, 이 모든 일이 '영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씁쓸한 느낌도 들긴 했다.


아무튼, 미국의 대학들을 둘러보며, 그리고 학교들을 보면서 이러한 교육이라면 미국이 적어도 앞으로의 50년 이상은 더 세계를 리드할 거란 생각이 들었고, 행여 리드를 한다는 개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 우수한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많이 배출할 것이고, 세계의 학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계속 할거란 생각은 더 확고하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미국에서 어학연수라도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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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이야기 : 청교도들이 세운 건국이념 - 미국교회와 건국정신


미국에 와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중에 하나가 미국의 교회이다. 


우리나라는 19세기말 미국계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통해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 우리나라는 이미 중국에 들어온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 공부하고 있었던 우수한(?) 민족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교회 문화가운데 상당수가 교회의 시초가된 유럽이나 중동지방의 문화가 아닌 미국적 색채가 강한 기독교로 인식되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장로교(Presbyterian) 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감리교, 성결교 등의 순서이다.


장로교는 교회의 중심을 장로회라는 원로회의를 통해서 결정권한을 갖고 있으며 계층적 구조를 띄고 있어 당시 신분적 계층구조 였던 시대상황과 잘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로교는 칼빈의 신정론을 받아들여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은 신이 미리 정해놓았다 라는 큰 틀에서 출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칼빈의 신정론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반면, 감리교는 칼빈의 신정론을 부정하고 누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존 웨슬리의 비교적 자율적인 신앙관을 기초로 발전한 교파이다. 


큰 틀에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으로 갈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큰 제약은 없다. 다만 신학적인 가치관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대부분이니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개인적으로는 칼빈의 신정론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이기는 하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교회가 과연 미국에도 그런지 궁금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교회를 중심으로 많이 움직여 보았다.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정말 미국에는 다양한 교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신교 외에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유대교의 회당이라든지 몰몬교 등도 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있는 교회들이 정말 오래되고 다양한 종파를 띄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내가 다녔던 지역이 도시 위주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루터교(Lutheran)와 성공회(Episcopical)이 눈에 많이 띄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종파와 상관없이 'Community' 의 지역교회 형태를 띄고 있어서 청교도가 정착한 나라라는 이미지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일부 교회들은 정말 100년이 넘은 것 같은 중세 유럽 양식의 건축물로 지어져서 들어가보면 엄숙함 마저 느껴지기도 했었다. 









미국은 대통령 선출 후에 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선서를 한다. 청교도적인 건국 이념이 반영된 것이다.


Taking the Oath (서약하다) 라는 말인데, 건국 초기부터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고 한다.(중간에 법전에 손을 얹고 선서했던 대통령도 가끔 있다)


미국이 이런저런 문제와 이념으로 말도 많고 총기 소지도 가능한 '무서운 나라' 이지만, 지금까지의 룰을 지키고 따를 수 있었던 근간에는 성경적 원리가 많이 적용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미국 현지인들은 착하고 배려하고 질서를 잘 지켰다. 


수많은 이방인들과 외지인들이 한데 섞여 있지만, 큰 틀에서 잘 지켜주니 문제가 생겨도 잘 극복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는 아직도 인종차별이나 심한 빈부의 격차, 지역간 편차, 다양성에 따른 혼란 등 수많은 문제들이 상존해있다. 그렇다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어려움 가운데서도 지금의 '아름다운 나라' 라는 위치를 잘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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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이야기


미국 건국의 기초 - 보스턴, 워싱턴 DC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휴런(SD) - 커니 (NE) - 헐리우드(CA) - 뉴욕(NY) - 보스턴(MA) - 워싱턴 (DC) 





뉴욕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무른 뒤에 보스턴과 워싱턴 DC 에 가기로 했다. 


두 도시 모두 뉴욕에서는 버스로 4~5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보스턴은 하버드와 MIT 등 명문 대학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의 시초가 된 중요한 지역이다.


흔히 우리가 듣는 티파티(Tea Party) 의 시초가 되는 지역이 바로 이 곳이다.


간단히 티파티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에 유럽에서는 박해를 피해 청교도들을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이주했다. 


그 중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에서 이주해 온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미국 동부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영국은 이 식민지 지역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영국의 물품들을 판매하게 된다. 너무 부당한 폭리와 세금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영국에서 보내온 홍차를 바다에 버리고 이 사건이 미국의 독립운동의 시초가 되게 된다.


티파티는 이후 미합중국의 건국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보수주의 세력을 지칭하는 말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가서 느낀건데 보스턴은 사실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도시 곳곳에 정말 맛있는 해산물 요리 전문점들이 많고, 퀸시마켓에서 맛본 크램차우더는 정말 맛있었다.













보스턴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이다. 오랜 전통도 있고,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런 팀이다.


시내에 있는 과거의 역사유적과 도심의 현대적인 모습들이 잘 어울러져 있는 멋진 도시였다.


특히 전세계에서 공부하러 오는 도시이기에 도시 속에 다양함을 굉장히 많이 갖추고 있으며, 도시의 수준이 매우 높다.


보스턴을 둘러본 뒤 뉴욕을 거쳐 워싱턴DC로 갔다.


DC는 명실상부한 미국의 수도이다.


District of Columbia (콜롬비아 특별구) 라는 명칭인데, 1871년대 말에 의회에 의해 수도로 정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뉴욕이었다고 하는데, 의회에서 남부의 강력한 반대로 뉴욕에서 옮겼다고 하니 그 배경이 더 궁금해진다. (이걸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다니!)


DC 도 볼거리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링컨기념관, 백악관, 의회, 대학들, 그리고 그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뉴욕에서 DC 로 가는길에 펜실베니아 , 메릴랜드를 지나는데 왠지 계속 삭막하다는 느낌이 드는 지역들이었다.


워낙 오래된 도시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지역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다.












 










때마침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여 우리가 백악관을 방문했던 바로 다음날이 취임식이어서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바마의 첫 취임식에는 흑인들이 60만명 가까이 보러왔다고 하는데 재선에는 40만명쯤이 모일 예정이라고 했었다. (오바마의 취임은 거의 흑인들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워싱턴에 오니 유독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더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수도여서 약간은 긴장감이 감도는 느낌이었지만, 이제서야 어느 정도 미국을 이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연사박물관을 한나절 보고나서 짧은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뉴욕으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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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이야기 세계의 중심도시 NYC - 그들은 어떻게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가.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휴런(SD) - 커니 (NE) - 헐리우드(CA) - 뉴욕(NY)


중부에서의 오랜 여정을 끝내고 시카고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휴런에서 만난 친구들은 개강을 맞춰 휴런에서 헐리우드까지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약 2500km 가 넘는 거리. 꼬박 3일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다. 시카고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크로스컨트리에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에 10년을 살았지만, 2500km 가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가기는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500km 이니까 왕복을 두번하고도 한 번 더 가는 거리다. 거리도 거리지만 길에서 만난 풍경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사우스다코다를 출발해 네브라스카, 콜로라도와 유타를 거쳐 네바다에서 캘리까지. 무려 6개 주를 거치는 긴 여정이다. 


특히 콜로라도와 유타에서 만난 풍경은 그랜드캐년의 모습과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그렇게 꼬박 3일의 여정을 지나, 헐리우드를 거쳐 동부로 넘어갔다. 



미국인들은 뉴욕을 빅애플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Finally, 드디어 미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하며 복잡한 미국의 도시에 들어왔다. 뉴욕, 뉴욕, 뉴욕.


밤에 도착해서 처음엔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몰랐다.


다행히 친구가 숙소를 빌려줘서 브루클린에 짐을 풀었다.











뉴욕은 영화에서도 그렇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서 사진도 많고 한데... 정말 꼭 한 번 가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뉴욕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첼시마켓, 센트럴파크, MOMA 가 기억에 남는다.


1) 첼시마켓 (http://www.chelseamarket.com/)


우리로 치면 광장시장 쯤 될까... 재래시장이라고 들었는데 때마침 내가 갔을 때는 리모델링 중이었다. 맛집이 모여있다고 해서 갔는데 리모델링으로 인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스러운 그 마켓의 느낌과 곳곳에 있는 멋스러운 가게들은 정말로 훌륭했다.


2) 센트럴파크 (http://www.centralpark.com/)

맨하탄이 이렇게 멋진 도시가 될 수 있었던건 센트럴파크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맨하탄섬의 허파역할을 하는 센트럴파크는 화려한 빌딩숲 사이에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3) MOMA (http://www.moma.org/)

그림을 잘 모르지만, MOMA 에서의 시간은 뉴욕을 다시 가고 싶은 도시로 만들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학교 미술시간에 책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한번에 모아서 볼 수 있는 대단한 곳이었다.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부터 피카소의 무수한 작품들까지... 시간이 모자라서 미술관을 다 못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모마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방문을 위해서 뉴욕을 다시 가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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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콜로니 그들은 누구인가 - 자신들 끼리 모여사는 독일 콜로니인들.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휴런(SD) - 커니 (NE)


워낙 넓기도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콜로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존재들이다. 


커니에서 연말을 보내고 다시 휴런으로 돌아왔다. 휴런은 인구가 겨우 1만 3천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도시이다. 


초등학교가 동서남북으로 한개씩 있고, 마을에 고등학교가 하나여서 거의 모든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그런 마을이다.


내가 머문 집에는 현지에서 중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사위가 있었는데, 그 친구 말로는 요즘 중부 내륙인 이 지역까지도 한국인들이 이민을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왜 한국인들이 여기까지 이민을 오게 되었는지 묻기도 하였다.


휴런에서 소경매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가 먹는 미국소가 다 이렇게 키운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소들은 정말 드넓은 초원에서 방목되어져 건초들을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소들을 저렇게 방목해서 키우고 있었다.


경매시장은 전세계가 다 비슷한가보다. 어디가나 경매사가 있고,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좋은 구경을 이 먼 미국 중부까지 와서 할 수 있었던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동영상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가운데 경매사와 왼쪽 어르신이 부자지간이라고 한다. 왼쪽 어르신은 경매일을 40년 넘게 해서 목이 다 상해서 더 이상 말을 잘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좋은 구경을 하고 나서 소경매장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이 곳이 바로 콜로니 지역 사람들이 통으로 일하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콜로니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자기들끼리 모여 살지만, 시내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공동으로 나눈다고 했다.


이 지역에 있는 콜로니들도 독일에서 온 콜로니라고 한다. 복장도 넘어올 당시의 복장(내가 그 당시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얘길 들었다) 을 입고 지낸다고 한다.


교육도 본인들이 직접 하고, 아무튼, 매우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대안교육,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고 해서 공동으로 경영해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콜로니들은 좀 다른 듯 했다.


이 내륙지역에는 정말 누군가 찾지 않는 이상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지역이다. 게다가 토양도 나름 비옥한 편이라 어느 정도의 농작물은 경작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인정하고 둘 수 있는 다양성의 문제일까, 아니면 쉽게 융화되지 못해 그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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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네이티브 아메리칸 - 아메리칸 인디안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터전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휴런(SD) - 커니 (NE)



누가 그랬을까,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정확한 말이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으로 철저히 지인들을 찾아 다니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다가 현지에 가서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게 되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 중 한 친구(자기도 외국인이면서) 왜 미국에 왔냐는 질문으로 이 여정이 시작되었다. 난 미국에 놀러온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모습들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영향을 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견학을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와 함께 미국인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난 흔쾌히 갈 수 있다고 하고, 얼떨결에 쫓아가게 되었다.


나를 안내한 친구는 케냐인인데, 본인이 도움을 받은 미국인들의 집에 초대받아 5년만에 방문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미국의 중부지역 사우스다코다주와 네브라스카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우스다코다로 가는 길은 정말 쉽지 않았다. LA 공항에서 덴버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트랜스퍼를 하고 3시간 정도를 더 가야했다.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덴버에서 확인차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의 전화가 계속 꺼져있었다. 난 혹시나 '뭐지... 거짓말했던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쨋든 비행기표는 이미 사 놓은 것이었고, 여정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못 만나더라도 안되면 현지 여행안내소의 도움이라도 받고자 일단은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그 친구는 핸드폰을 못 봤던 것이었고, 시간에 맞춰서 비행기를 기다려주었다. 딜레이되어서 2시간이나 연착되었는데 다행히 때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사우스다코다주의 주도는 수폴스Sioux Falls 라는 지역이다. 왜 지명이 Sioux Falls 라고 되어 있냐고 했더니 Sioux 라는 말은 인디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사전을 보니 Sioux 라는 인디언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미국 중부지역에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맞아준 분들은 인디언들은 아니었고, 정말 완전한 백인 미국인분들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동네 전체에서 유색인종 자체를 보는게 정말 어려웠다. 동양인은 물론이고, 흑인도 거의 없고, 그나마 유색인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네이티브 어메리칸(인디언)들 뿐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 영어를 배우면서 배웠던 원어민이라는 단어는 Native Speaker 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미국의 네이티브스피커는 백인이나 흑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네이티브스피커는 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니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시아계든 상관없는 표현이다. 다만 네이티브 어메리칸 즉, 미국의 원주민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건 미국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미국에 사는 인디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난 정말 여기와서 처음 알았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미국은 인디언이 먼저 살고 있었고,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인디언들은 거의 다 죽고, 남은 인디언들도 격리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당시에 한 잡지에서 현재 인디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특집기사로 내놓은 걸 본적이 있다. 


지금은 80% 남짓의 백인들과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들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 인디언들은 얼마나 오래 살고 있었는지 아무도 알고 있지 않다. 다만 먼 옛날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땅에 발을 딛게 되있고, 멕시코, 페루 등으로 뻗어 나갔으며 꽤 오랜 시간을 이 곳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서양인들의 대량 학살로 대다수의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들의 용맹함은 꽤 많은 모습으로 남아있고, 군대에서 쓰는 아파치 헬기라든지 인디언들의 이름을 곳곳에 쓰는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다.

















위 사진들은 네이티브 어메리칸들의 기록과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

맨 아래 꿩은 휴론이 세계 최대의 꿩 사냥지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이렇게해서 생각지도 않게 미국의 중부까지 가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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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드넓은 대륙 - 아메리카

   
- 넓은 사막지대의 활용, 그리고 라스베가스.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에...


순전히 현지 지인의 권유에서 시작했다. 원래 나의 계획은 철저히 지인들이 있는 곳을 기점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현지에서 보다 더 정확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고, 아무래도 관광 목적보다는 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나에게 순전히 오락도시인 라스베가스를 가는건 어떤 면에서는 사치라고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엘에이까지 갔는데 그랜드캐년을 보고 오지 않는 것은 온 것도 아니라는 현지 지인의 설득도 일리가 있고, 그랜드캐년을 가려면 라스베가스를 묶어서 갈 수 있는 패키지가 있어서 더욱 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단체로 오신 한인들과 함께 현지 패키지 여행을 시작했다.


엘에이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차로 약 8시간 거리에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차로 픽업을 해서 여행사앞 집결지에 모인다음, 중간중간 경유지를 거쳐 사람들을 픽업해서 이동했다(한인들이 많다는 것은 이런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일정은 로스엔젤레스를 출발해 바스토우를 지나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그랜드캐년으로 출발해 그랜드캐년을 보고 난 후 콜로라도강 줄기에 있는 로플린이라는 지역에서 1박, 다음날 캘리코 관광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일정이 사실 매우 빡빡한 편이다. 어차피 많이 둘러보려고 온 것이니 여기저기 다녀보자 라는 심정으로 차에 탔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차를 그렇게 오래 탔던 것 같다. 사실 어느 패키지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려서 1시간 둘러보고 다시 차로 4~5시간 이동 후 또 내려서 2시간 둘러보고 다시 차로 이동하는 이런 일정은 난생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미국 대륙이 그렇게 넓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에 있을 때도 대륙이 넓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동을 할 때 차로 이동하기 보다는 대부분 기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움직임이 비교적 편안해서 여정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차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건 인내심이 좋은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하루 종일 차를 달려서 저녁쯤이 되어서야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분은 이 도시가 Sin's City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했다. 사실 겉으로는 매우 화려하지만,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삭막한 도시이기도 하고, 유일하게 갱들이 좌지우지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본주의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여기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티비에서만 보던 라스베가스를 실제로 본 소감은 정말 감개무량했다. 우선 수많은 특급호텔들이 번쩍이는 불빛들을 비추며 서로가 더 비싼 호텔이라고 자랑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 관광온 수많은 관광객들도 카지노와 다양한 쇼에 돈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라스베가스가 카지노로 유명한 걸로 알고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쇼가 많은 것으로 더 유명하다고 했다. 유명한 서커스인 태양의 서커스를 비롯해 다양한 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전시회 역시 미국 최고의 가전 전시회인 CES 쇼를 비롯해서 다양한 전시회가 라스베가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벌써 3년이 다 되가는 일이다보니 또 많이 변했을 것이다. 아무튼, 12월 초중순이었는데 날씨가 꽤 추웠다. 정말 사막한 가운데 저런 도시를 만들었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어마어마한 호텔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도 그렇고, 전세계 각지에서 이 곳을 그렇게 찾아다니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단순히 카지노를 하기 위해서만 이 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라스베가스라는 브랜드를 체험하고 느끼기 위해 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제도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데 라스베가스를 보고나서는 사실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실현해놓은 것 같은 전시장의 느낌이 들었다. 라스베가스는 다른 전시를 하기 위함이 아닌 자본주의를 전시해 놓은 전시장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일 것 같았다.


그렇게 라스베가스를 뒤로 하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점심 때가 지나 드디어 그랜드캐년에 도착했다. 그랜드캐년을 처음 보고 정말 스펙타클하다는 느낌이었다.  스펙타클을 우리나라말로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를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대협곡이라는 의미의 그랜드캐년을 처음 본 미국인들은 느낌이 어땠을까, 과연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왔던 인디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태어나서 인생에 한 번 쯤은 그랜드캐년에 와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국이 작아서 그런것일 수도 있지만, 그랜드캐년은 결단코 세계 어디에서 볼 수 업는 장관 중의 장관이다. 이런 곳에서는 왜 항상 숙연한 마음이 드는것일까.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부러웠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영어를 잘하고, 맛집이 많은 것들은 부럽지 않았는데, 그렇게 넓은 땅을 갖고 있는건 처음으로 부러웠다. 중국에서는 땅이 넓어도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쓸모없는 땅이 많아서 그렇게 부럽거나 하지 않았는데, 미국은 정말 그렇게 넓은 땅에 그렇게 좋은 토질을 갖고 있는 땅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는 곳이 너무 많았다. 아마 우리나라였으면 지역개발 500년 계획이라도 짰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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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민 1세, 1.5세, 그리고 2세 - 다양한 이민 계층의 현실태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뒤로 하고 지인이 많은 LA로 향했습니다.

 

프로펠러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지역 LA, 그 곳에는 저의 지인들도 꽤 많이 가 있습니다. 한국지인, 중국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 미국으로 가면 이민으로 가거나, 적어도 1년 이상 장기로 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인타운을 뛰어넘은 한인시티가 형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엘에이를 기점으로 오렌지카운티, 리버사이드, 어바인 등 지역이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행정구역에 대해 잠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미국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50개의 주(State) 로 형성되어 있고, 각 주를 대표하는 주도(Capital of state)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도시들(city)가 있는데 특이한 점은 city 위에 County 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의상 군(郡) 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시보다 작은 단위가 군이지만, 미국에서는 몇개의 작은 시들이 모여서 군(County)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시와 주의 중간 개념으로 이해하는게 더 맞는 듯 합니다. 참고로 캘리포니아의 주도는 흔히 LA로 알고 있는데(나만 그랬나..) 새크라멘토라는 도시 입니다. 


캘리포니아는 LA 지역을 기점으로 캘리포니아 남부를 SoCal (남가주) 라고 부르고,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한 NoCal(북가주) 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남가주 지역은 정말 날씨가 좋고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사막지역인데도 불구하고 멀리 콜로라도강에서부터 물을 끌어와 도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별로 오지 않아서 약간은 건조한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답답하지도 않고, 아무튼 왜 다들 이 쪽으로 이민와서 노후를 보내시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레돈도비치 부근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


이번 여정에서의 주제는 이민자(Immigrant) 입니다. 미국은 흔히 백인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인종들이 뒤섞인 진정한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인종 비율을 보면 백인이 대다수였지만, 앞으로는 히스패닉과 흑인, 아시아인이 많은 비중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표는 미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백인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 이 민족, 저 민족 섞여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미국인 부부의 경우 남편의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노르웨이인, 아내의 아버지는 아일랜드인, 어머니는 폴란드인 뭐 이런 식이죠. 그래서 그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도대체 어느 민족의 핏줄일까요? 대략 이런 식인데요.


저 어릴 때는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는 전혀 없고 오히려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서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백인들의 경우에는 이민오기 전부터 영국계이든, 독일계이든 어느 정도는 앵글로색슨, 또는 비슷한 인종에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동양인이나 아프리칸 흑인들이 이민갔을 경우와 비교했을 때 처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조금은 멀리 이사온 느낌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전에는 정치적 이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머물수 밖에 없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먹고 살기위한 자발적 이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는 최초의 하와이 이민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당시엔 거의 일꾼으로 갔던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새 나라에 대한 기대보다는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열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의 이민은 우리보다는 조금 앞서는데요, 서구열강들로 인해 강제로 개항이 되고 나서 부터 미국이나 유럽으로 본격적인 이민행렬이 이어집니다. 대부분 미국 서부에 정착하면서 지금의 거대한 차이나타운을 만들기 시작하죠.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 역시 영어로 알고 있는 Golden Gate Bridge 라는 말보다 금문교가 더 익숙한 이유는 어쩌면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가 중국인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도심에서도 꽤 다운타운에 속하는데 이는 과거에 도시 건설을 위해 희생을 많이한 중국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라는 의견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미국은 이렇듯 다양한 이민자들이 이주해 세워진 나라이다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역별로 다른 특색을 갖고 있고, 한 도시에도 어느 민족이나 인종들이 모여 사는 그런 마을들이 있어서 한편으로는 재밌게도 느껴집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이민이라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느낀 이민자들은 대부분 세대간의 격차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1세대들은 정말 생존을 위해 이민을 간 경우가 많습니다(유학을 갔다가 정착한 경우도 포함).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자신들도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이민을 떠납니다. 


불법이민자들, 그리고 생각보다 치열한 현지의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착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쩔 수 없이 달라야만 하는 세대간의 격차도 그들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민 1세대(백인이나 유학생이 아닌)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이민을 가는 1.5세대 역시 대부분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이야 본인들의 의지로 잘 통하지 않아도 이를 악 물고 버티지만, 1.5세대들이 처음에 겪는 문화충격은 상당한 것 같습니다. 다른 말을 쓰는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어려움은 사실 겪어보지 않고는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의 시간을 지나 몇 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된 뒤에는 1.5세대들이 부모세대들의 통역사 역할을 자처합니다. 대부분의 1.5세대들은 영어가 익숙해지고 학교생활도 자리를 잡아 어느 정도 현지 문화에 적응하지만, 1세대들은 사실 몇년이 지나도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녀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온 1.5세대들은 현지의 다른 인종과 결혼하거나, 자신들과 같은 1.5세대 혹은 2세대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자녀들이 태어나면 또 다른 2세대가 되는데, 그들이 겪는 문화는 1.5세대나 1세대 들에게는 또 한 번 전혀 새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현지에서 태어나 자라는 건 또 다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이민을 가면 대부분 대한민국의 피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국이야기가 나오면 매우 들떠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한류나 K-pop 등의 영향으로 한국이 많이 알려져있지만, 2세대들에게 다가오는 한국은 어쩌면 우리 조상들(?) 이 살던 외국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에 가끔 등장하는 재외동포 한인 2세, 3세의 성공기들은 사실 그들은 조상들이 한국인이었다는 실낱같은 연결고리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기사이고, 당사자들은 고마워는 하지만 그런 기사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엘에이에서 포모나로 가는 하이웨이에 보이는 빅베어(Big Bear)라고 부르는 산입니다.


포모나의 어느 컬리지 동네에서 보이는 노래자랑 인 듯 하였습니다.


이 곳(LA와 오렌지카운티)의 한인들은  미국에 가장 처음 이민한 한인 이주자들이었습니다. 이미 K-town 이라는 코리아타운은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편한 지역이 되어 있었고, 미국 곳곳에서 성공한 한인들의 스토리들이 많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지인들도 현지에서 꽤 정착해서 현지에서 의미있는 삶들을 살고 계셨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느껴지면서도 또 한켠로는 가슴이 약간 먹먹해 오는 느낌은 왜 였을까요...


아무튼, 현지에서 열심히 살고 계신 분들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저도 여기서 열심히 화이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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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엉뚱한 상상의 대박 - 실리콘밸리의 현장


미국에 가보고 싶었던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현장을 보고 싶은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실리콘 밸리 - Silicon Valley  , 우리말로 하면 '실리콘 동네' 정도의 뜻이죠. 


우리나라도 판교나 강남 일부, 구로디지털단지 등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지역들이 있습니다.


모두 이 Bay Area 의 실리콘밸리를 흉내낸 지역들이지요. 대개는 IT나 신기술을 갖고 창업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모여있는 곳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실리콘밸리에는 미국 최고의 기업들이 줄줄이 모여있습니다. IT 기반의 회사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도 학교 옆에 硅谷(Guigu , Silicon Valley 의 중국어 번역) 라는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도 사고 주변기기도 많이 샀었습니다.


아마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실리콘밸리는 지명 이상의 큰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회사를 나와서 새로운 사업의 구상을 위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전세계 창업의 메카인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그 많은 회사들이 공존하는지 그 생태계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인들을 총 동원해서 실리콘밸리에 있는 몇 분들을 소개 받고 이 지역에 1주일 정도를 머물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로 다니는 통근열차입니다. 듀플렉스(복층)로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출퇴근시간에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고요, 우리나라처럼 기차에서 자전거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내려서 회사까지는 거리가 꽤 되니까요)



팔로알토로 가는 길에 있는 산까를로스 역입니다. 우리나라의 옛 경춘선 간이역같은 느낌입니다. 내리자마자 주차장이에요. 



스탠포드의 상징인 타워를 뒤에 배경으로 찍었습니다. 옆에 중국인 유학생인듯한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스탠포드의 어느 빌딩 안 야드입니다. 하버드 야드에서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스탠포드 밖으로 나오면 여러 상점들이 있는데 미국의 프랜차이즈인 치즈케익팩토리가 보입니다.



실리콘밸리가 본거지인 애플의 브랜드스토어도 보입니다. 통유리로 된 디자인이 멋있습니다.



창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 답게 곳곳에 이렇게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센터역할을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역시 스탠포드 앞 어느 건물 전경입니다. 



새로 스타트업을 받기 위해 인테리어를 하는 모습이 보여 찍어봤습니다(구글에 찾아보니 한창 운영중이네요)



당시의 내부 전경입니다.



팔로알토의 가을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보더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서점프랜차이즈인데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이곳에는 당시에 삼성에서 벤쳐센터를 만드는 걸로 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명물인 피츠커피 입니다. 수입하고 싶네요. ㅎㅎ



애플 본사중의 한 곳인 디안자 빌딩 앞에서 찍었습니다. 조만간 스페이스?? 로 이동하겠네요.




이곳은 산타클라라에 있던 한인마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국 곳곳에서도 중국어가 많이 보여서 다니는데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Bay Area from Google Map service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산호세까지 이어지는 긴 Bay Area 지역을 일컫는데, 중간에 Menlo Park, Cupertino , Palo Alto, Mountain View,  Santa Clara 등의 작은 도시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많은 한인들도 이 지역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인 스탠포드대학교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방문지는 스탠포드가 있는 팔로알토 지역이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 꿈의 학교로 불리던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얼마나 감개가 무량했는지 모릅니다.(미국의 여러 지역들을 다니면서 이런 감정들을 계속 느끼게 되긴 하지만요)


스탠포드는 정말 엄청난 면적을 자랑합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도 중국에 있어서 꽤 넓은 편이었는데, 이 곳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을 다니는게 익숙하다고 합니다.(중국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창립자 스탠포드가 하버드의 대항마로 만들었다는 서부 최고의 명문, 항상 UC버클리와 경쟁하며 서부의 자유로운 사상을 뿌리내리게 한 곳, IT 관련 학과는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나타내는 학교(MBA, Law School 등도 미국의 Top 에 랭크)입니다. 


학교를 둘러보면서 뛰어난 학생들이 부럽다기 보다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캘리포니아에서도 Bay area의 날씨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건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시간을 내서 스탠포드가 있는 학교 주변의 카페를 돌아보았습니다. 카페마다 노트북을 들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미팅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창업 분위기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훨씬 활기차 보였습니다. 특히 학교 주변에 다양한 벤처캐피탈 회사들이 사무실을 내고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

실리콘밸리는 소도시별로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플은 쿠퍼티노, 페이스북은 먼로파크, 구글은 마운틴뷰와 같은 식이죠. 워낙 땅이 넓어서 굳이 붙어있지 않아도 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기업이 성장하고 성장한 기업은 다시 지역에 공헌하는 선순환이 나름 잘 이루어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스탠포드의 서점안에 당시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잡스를 기리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

이 곳은 앞서 언급을 드린 것 처럼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만을 갖고도 창업을 하려고 하는 곳입니다. 물론 비지니스가 생각만큼 쉬운 것도 아니고, 워낙 뛰어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왠만한 아이디어로는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어느 카페든지 노트북 하나 놓고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상담을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습니다.

현지에 계신 지인분도 이 지역을 이렇게 소개하셨죠. '뜬구름 잡는 얘기를 들어주고, 그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로 투자를 하고 창업을 해서 꿈을 실현시키는 기업을 만든다' 라는게 이 지역의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창업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창업은 우리나라에서는 IT 세계만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한적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있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창업이란 젊은 도전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나이의 여부, 학력의 여부, 직업의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든 도전하고 기업을 만들수 있게 했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장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도 동부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창업을 해도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고, 대부분 전통적인 직업 - 은행, 의사, 대기업 등에서 일하는 행태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부는 이민자들도 많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IT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모든 것을 다 갖기는 어렵겠지만, 현재의 상황안에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좋은 아이디어로도 창업하고 지원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면 더 나은 국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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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nerary : San Francisco 


A Dream of the United States for 80 days - 1.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
 
- 미국의 첫인상

 

10시간이 넘게 태평양을 건너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이국(異國)땅의 첫 인상은 항상 국경(공항/항구)에서 마주친다.


미국의 이민심사국 직원은 입국심사대에서 나의 입국 이유와 체류 일정 등을 세세하게 질문한다. 20년이 넘게 배워온 영어지만, 중간중간 뱉어놓은 말에서 어색한 문법을 곱씹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입국심사대의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백인이라면 대부분 환영하는 아시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수많은 유럽계와 캐나다인들도 입국 심사대에 서서 나와 똑같이 세세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해야만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조금은 더 유창한 영어로 약간의 joke 를 섞어서 얘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재미있는 풍경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입국 심사대 맨 끝에 '이민자 통로(Immigration Path)' 가 따로 있어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입국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미국 땅으로 어렵게 이민을 준비하고 드디어 그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작부터 긴 줄을 서서 까다로운 심사관들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민자' 로서의 입국을 허가받을 수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민자의 대부분이 아시아지역(특히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출입국심사를 마치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진정한 미국의 영토에 발을 딛게 된다. 그 때부터 맞이하는 얼굴들은 모두 환하고 밝게 낯선 이국인들을 반긴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의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약 90일. 비자가 만료되는 순간까지 꽉 채우고 돌아가려는 속셈이다.


첫 관문은 샌프란시스코로 잡았다. 미국에 수많은 도시가 있지만, 가장 미국적이지 않으면서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바로 그 곳이다. 100년전 중국 이민자들이 수없이 건너와 희생하며 만든 차이나 타운과 미국의 중산층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곳. 미국 최고의 대학인 스탠포드와 UC버클리가 마주한 이 곳. 전통보다는 창의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가 옆동네인 바로 이 곳이다. 



첫날부터 숙소를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정말 비행기표만 하나 달랑 들고 왔을 뿐이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는 속담은 정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내가 간 시즌이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연휴기간이어서 거리마저 한적한 그런 시즌이었다.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기위해 하루 종일을 걸어다녔다. 지인이 소개한 한인교회를 찾아가보기도 하고,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중국인에게 숙소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길을 묻다가 생전 처음으로 Jewish Synagogue(유대인 회당)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길을 물었던 미국인이 이곳의 직원이어서 컴퓨터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타종교의 사원은 내가 정말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홈스테이나 민박, 저렴한 호텔 그 어느 하나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는데 때마침 다운타운 근처에 나같은 여행객을 위한 값싼 호스텔이 있었다. 


하루에 30~50달러 수준으로 한 방을 여러 명이 나눠써야 하지만 장기 여행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와같은 여행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한가.


첫 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같은 방을 쓰게 된 한국분과 저녁을 먹었다. 출장을 왔다가 하루 더 연장해서 여행을 하려던 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여정은 시작되었다. 






호스텔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묵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호스텔에 장기투숙하는 미국인 알바생부터 나 같이 한국에서 온 단기 여행객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장기여행자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호스텔의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어 친해진 한국분과 며칠을 동행하기로 했다. 


처음이라 관광지위주로 코스를 잡았다. 샌프란시스코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 그리고 영화로도 유명한 알카트라즈 감옥섬, 샌프란 맞은편의 조용한 도시 소살리토와 최고의 크램차우더를 맛볼수 있는 피어까지다. 










많은 여행자분들이 사진이나 자료를 올리셨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서 주로 현지에서의 감상 위주로 글을 쓰려 한다. 


샌프란에서 만난 오랜 형님이 있다. 안지는 10년이 넘었지만 미국 교포여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가 때마침 샌프란에 거주하셔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고 만나게 되었다. 미국에 견학을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미국에서 반드시 봐야하는 도시로 Six Gateway Cities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동부에는 Boston, New York city, Washington D.C. 가 있고, 서부에서는 Seattle, San Francisco, Los Angeles 가 바로 이들 도시이다.  

물론 미국에는 이들 도시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들이 많지만 다 돌아보기에는 어려우니 이 도시들 정도만 보더라도 미국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앞으로의 여정에서 얼마나 볼 수 있을지 몰랐지만 가능하면 다 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컸다. 그만큼 시간을 갖고 돌아볼 수 있는 젊음과 여유가 앞으로의 삶에서 또 언제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샌프란을 이곳 저곳 다니며 느낀 것이지만 미국은 선진국이 확실했다. 다양한 인종에(중국에서도 인종이 다양했지만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미묘한 균형도 느껴졌다.


과거 미국 서부의 대도시들은 동부와 중부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금광을 발견하고 금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험난했던 서부 대개척 시대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고 평온하고 여유있는 서부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노숙자와 빈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조차 좌절과 절망보다는 어렵지만 이런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은연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글이라 너무 띄운 느낌이 나지만, 그만큼 처음의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당시의 벅찬 감동이 생생하다.


감동의 여운을 뒤로하고 Tony Bennett 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를 함께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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