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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커서 뭐가 될래?'

어릴 때, 특히 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다. 다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은 특정 '직업'을 대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꿈'을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저는 커서 XXX같은 사람이 될래요'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을 느낀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는 누구보다도 위인전집을 많이 보유하고 읽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그런 대답에는 매우 인색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단순히 교만해서 그 사람들이 무언가 배우고 따라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기 보다는 내가 찾는 그런 적절한 롤 모델이 없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위인들은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회에 공헌하였기 때문인데, 시초부터 나는 평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어릴 때 딱히 큰 역경이나 고난도 없었기 때문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때는 내가 '누구를 배우고 싶고, 어떤 사람을 닮고 싶다'라고 할 만한 그런 위인은 나에게 없었다. 대부분의 위인전에는 과거의 왕, 장군, 독립투사, 당대의 문인, 뛰어난 과학자 정도만이 위인으로 나와있었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거나 조금은 더 평범한 그런 사람이 없었던 탓일거라는 핑계를 대어본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역할모델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절실히 느끼고 깨닫고 있다. 20대 후반에 그런 생각이 든 것은(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아주 어리고 지금 깨닫게 된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고 있는데) 사실 약간은 우스운 그런 일이기도 하다. 어릴 때 그렇게 위인전을 많이 보고 끼고 살았지만, 그 위인들과 나는 서로 다른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릴 때 왜 위인전을 읽는지, 역할 모델을 정하고, '누군가 처럼 되고 싶다' 라고 말하고 꿈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많이 느끼고 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의 경우를 봐도 어린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역할 모델을 제시해 준다. 이주 초기 시절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 장군부터 벤자민 프랭클린, 에이브럼 링컨, 최근의 오바마 까지, 인구대비 위인들을 꽤나 많이도 배출한 국가이다. 언어 어드벤티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최고의 대학들을 수십개나 보유한 학계나 세계 1위의 경제력을 뒤에 업은 재계, 심지어 할리우드를 기반으로한 연예계에도 미국은 위인(?)이라고 칭할만한 뛰어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숱하게 배출되고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금의 미국이 이만큼 성장하는데는 역할 모델을 비교적 제대로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는 편이다.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막부시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결정짓고 그들을 비교하며 장단점을 취하고 분석하고 공부한다. 중국은 영웅호걸들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인구에 맞는 다양한 인물들을 배출했고, 최근 50년간은 모택동이라는 대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은 내 기대만큼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김유신 장군 등은 물론 뛰어난 인물이지만, 모두 왕족, 장군 출신이라서 나와 같은 평범한 배경의 현역 출신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근대사로 넘어와보면 현실은 조금 더 비참하다. 난 개인적으로 아주 애국심이 투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 하나다. 근대라고 한다면 물론 조선후기, 대한제국시절,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전 까지 쯤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임시정부의 인사들을 역할모델로 정하고 싶은데 이 분들의 업적은 당대의 시대상황 때문인지 매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내가 존경하려고 노력중인 김구 선생님도 결국 이렇다할 직함 하나 없이 암살당하시고 만 분이 아닌가.(물론 김구 선생님은 정말 존경할만 하신 분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근대사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간 사람들은 친일 성향을 갖거나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해방 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독재정권, 군부정권 등으로 인해 어릴 때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요즘의 정치상황을 알고 난 뒤에는 '대통령' 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은 뭔가 다른 속뜻이 있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게 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난 항상 경영학도라는 전제하에 우리나라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낸 재계를 한 번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근면성실하게 해오신 분들 보다는 대부분 과거 '정경유착'을 뿌리로 대대손손 재벌을 이끌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그들의 잔치에 편승하는 것을 택하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다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그래서 학계로 넘어가 보았다. 우리는 과거부터 '선비정신'을 최고로 치던 민족이 아니던가. 학계에는 그래도 비교적 훌륭한 분들이 여럿 계셨다. 하지만, 그 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폴리페서부터 시작해 묵묵히 학문을 위한 길보다는 '가르치는 직업' 또는 '연구비에 목숨거는 외곬수' 로 전락하기 쉽상이라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바로 '패닉'상태에 접어들었다. 내가 미래에 대한 '꿈'을 잃게 된 것은 단순히 나의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역할 모델'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그에 따른 부재 역시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난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을 모델로 삼아야 할까.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나는 먼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그 항목들에 맞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장점만을 취하여 나에게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수필가가 되고 싶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쯤 수필집을 한 권 집필해 보고 싶다. 그 것은 수필을 읽기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故피천득, 故장영희 등 대한민국이 배출한 감성이 풍부한 뛰어난 수필가들의 책을 접해 본 뒤에 그렇게 해 보고 싶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책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그 인물들을 통해서 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을 찾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나의 현실과 비슷하고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과거 보다는 최근의 역사에서 찾아보려고 노력을 한다. 아무래도 동시대에 있는 사람들이면 공감대가 형성되기 쉽고, 서양보다는 동양 문화권에 조금은 더 익숙하고 그 사고방식 역시 받아들이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맞는 위인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각각의 인물들의 장점만을 뽑아내어 배우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티비에서 본 것 처럼, 얼굴의 각 부분이 가장 예쁜 사람들의 부분을 모아서 합성을 하면 그 조화가 매우 부자연 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 처럼, 그 인물들의 장점을 믹싱해논다면 '인간 도진우'라는 사람보다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볼썽사나운 '존재의 탄생'이 될지도 몰라 경계하고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내가 찾는 역할 모델들의 장점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의 상황과 현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도록 최대한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말이다.

교육에 아주 관심이 많은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역할 모델로 설정하고 답습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야 '열등의 비교'가 아닌 '성장을 위한 비교'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어렵다. 친일파, 좌익 우익, 탈세, 재벌 등 각종 정치적인 압력과 격변하는 시대 탓에 이렇다 할 인물들을 배출하지 못했거나 배출했다 하더라도 전국민이 공인하는 그런 인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연예인들이 우상화되어 어린 아이들에게 연예인이 최고의 인물들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에 있다. 각자의 개성이 모두 다른 것 처럼 그 역할 모델 또한 모두가 다르고, 어느 정도는 구색을 갖추어야 하는데 천편일률적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역시도 쉽게 바뀐다. 연예계의 생리상 스타들은 빨리 나타나고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정치색을 배제하고, 인정해 줄 것은 인정하면서 아이들이 꿈을 키우며 배울 수 있는 그런 위인들을 찾고 발굴하는데 우리 교육계가 힘을 쓰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훗날 어느 나라의 어느 초등학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커서 뭐가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저는 XXX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는 작고 소박한 소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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