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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리말로는 그렇다.

영어로는 Essay 에세이라고 한다.

수필의 본 뜻은 '펜이 가는 대로' 적는다라는 말이다. 즉, 특정한 주제와 맥락, 형식 없이 자유롭게 기고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특히 젊은 세대가 될수록 펜으로 쓰는 글은 영 보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타자기부터 시작해 컴퓨터, 노트북, 그리고 최근의 모바일폰까지 넘어오면서 이미 펜으로 무엇을 쓴다는 것이 매우 고리타분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에세이를 '수필'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수판=자판을 따라간다'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싶다. 실제로도 펜으로 수필을 쓰지 않고, 키보드(자판)에 손을 올려야 글이 써지는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에세이를 꽤 좋아한다. 물론 좋아한다는 말은 읽는 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고, 부분 부분 나눠 읽는 버릇이 있어 여러 편이 묶여 있는 수필집을 읽는 편이 꽤 좋았다.

그리고 소설이나 다른 문학작품 처럼 허구에 지나지 않고, 대개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기 때문에 그 사실적인 묘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학업에 주로 시간을 썼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물론 핑계이지만), 그나마 학창 시절에 읽던 에세이 두 작품은 지금도 간간히 생각이 나고 다시 읽고 했다.

가장 처음 생각나는 글은 故법정 스님의 '무소유' 이다. 법정 스님이 타계하시기 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공수래공수거'라는 의미를 잘 묘사했던 에세이라 꽤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당시 아무런 종교가 없던 나에게 무소유라는 개념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꽤 의미 있는 어떤 철학적인 느낌까지도 있었다.

법정 스님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불교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꽤 인정받는(?) 훌륭한 신앙심으로 알려지신 분이고 아마 일정 기간의 미래에도 그렇게 보일 것 같다(종교를 막론하고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다음 좋아하는,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아하는 에세이는 故피천득 작가님의 '인연'이다. 당시 교회를 다니던 내가 인연이라는 단어가 불교 용어라는 말을 듣고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참 의미가 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에는 고등학교 시절인 데다가, 이 책을 쓴 피천득 작가님과도 연배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에 그저 고전으로만 느끼고 읽게 되었다. 다만, 이 에세이들의 주요 내용이 20~30대 시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서 그 정도로 거리감을 좁히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내가 중국에 가게 되고 생각보다 오래 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겪으면서 이 책을 다시 읽으니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사실 거의 다 였다), 무엇보다 이 분이 쓰신 문체가 내가 중국어를 배우고 읽으니 한 글자 한 글자가 눈에서 뇌로, 다시 가슴으로 전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특별하게 이 에세이는 무려 4번이나 다시 읽고 아마 남은 생애에도 최소 3번은 더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는 군대 때 처음 알게 된 故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들이다. 이 분은 서강대에서 오랜 영문학 교수 생활을 하며 겪은 내용들을 에세이로 남기셨는데 특이하게 '감사' 등 뭔가 주제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에세이집 제목을 정하셔서 그 주제에 맞는 글을 읽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적고 보니 위에 3분 모두가 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이구나!) 이 분은 피천득 님과 마찬가지로 영문학 교수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문학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셨다.

특히, 본인이 어릴 때부터 장애를 안고 계셨어서 장애인으로서 이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신이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등에 대한 내용들을 남기셔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위에 피천득 님과 장영희 교수님 모두 영문과 교수를 하신 일도 내가 영문학에 관심을 갖는데 꽤 기여를 하신 것 같다.

뭔가 수필집이라는 것은 국문과 교수나 중문과 교수가 에세이를 쓴다는 느낌보다는 영문학 교수나 불문학 교수가 수필집을 쓴다고 하면 좀 더 고상한 느낌이 더 들어서일까.

마지막으로는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수필집이 꽤 괜찮았다.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고 '아니 무슨 소설을 이런 식으로?' 라고 생각했었는데, 내용이 다시 상기되거나, 영화로 나올 때 다시 보면서 느낀 점은 참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도 있지만, 이 분이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생각보다 무척이나 많이 출간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중에 읽었던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책은 대개의 일본 작품들이 그렇든 정말 편안하게 쓰는 문체라든가, 우리와 어순이 같아 우리 글을 읽는 듯한 문체라든가, 그러면서도 뭔가는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일본적 정서가 배어있는 글들을 보면서 참 어색하지만 익숙한 느낌들이 있다. 게다가 에세이에서도 깊이를 느끼는 경험들을 가끔 하게 되면 참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간간히 에세이를 올리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겪으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일들을 글로 옮기는게 꽤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내 수필도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적어도 10명 정도는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일기처럼 나만 간직하고 비밀을 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에세이를 써서 누군가가 내 생각에 공감해주고 같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요즘의 디지털 시대의 힘이 아닌가. (글을 다 쓰고 맞춤법 검사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MR.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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