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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콜로니 그들은 누구인가 - 자신들 끼리 모여사는 독일 콜로니인들.


Itinerary : 샌프란시스코 - 실리콘밸리 - 로스앤젤레스 -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휴런(SD) - 커니 (NE)


워낙 넓기도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콜로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존재들이다. 


커니에서 연말을 보내고 다시 휴런으로 돌아왔다. 휴런은 인구가 겨우 1만 3천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도시이다. 


초등학교가 동서남북으로 한개씩 있고, 마을에 고등학교가 하나여서 거의 모든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그런 마을이다.


내가 머문 집에는 현지에서 중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사위가 있었는데, 그 친구 말로는 요즘 중부 내륙인 이 지역까지도 한국인들이 이민을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왜 한국인들이 여기까지 이민을 오게 되었는지 묻기도 하였다.


휴런에서 소경매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가 먹는 미국소가 다 이렇게 키운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소들은 정말 드넓은 초원에서 방목되어져 건초들을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소들을 저렇게 방목해서 키우고 있었다.


경매시장은 전세계가 다 비슷한가보다. 어디가나 경매사가 있고,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좋은 구경을 이 먼 미국 중부까지 와서 할 수 있었던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동영상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가운데 경매사와 왼쪽 어르신이 부자지간이라고 한다. 왼쪽 어르신은 경매일을 40년 넘게 해서 목이 다 상해서 더 이상 말을 잘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좋은 구경을 하고 나서 소경매장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이 곳이 바로 콜로니 지역 사람들이 통으로 일하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콜로니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자기들끼리 모여 살지만, 시내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공동으로 나눈다고 했다.


이 지역에 있는 콜로니들도 독일에서 온 콜로니라고 한다. 복장도 넘어올 당시의 복장(내가 그 당시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얘길 들었다) 을 입고 지낸다고 한다.


교육도 본인들이 직접 하고, 아무튼, 매우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대안교육,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고 해서 공동으로 경영해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콜로니들은 좀 다른 듯 했다.


이 내륙지역에는 정말 누군가 찾지 않는 이상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지역이다. 게다가 토양도 나름 비옥한 편이라 어느 정도의 농작물은 경작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인정하고 둘 수 있는 다양성의 문제일까, 아니면 쉽게 융화되지 못해 그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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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nerary : San Francisco 


A Dream of the United States for 80 days - 1.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
 
- 미국의 첫인상

 

10시간이 넘게 태평양을 건너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이국(異國)땅의 첫 인상은 항상 국경(공항/항구)에서 마주친다.


미국의 이민심사국 직원은 입국심사대에서 나의 입국 이유와 체류 일정 등을 세세하게 질문한다. 20년이 넘게 배워온 영어지만, 중간중간 뱉어놓은 말에서 어색한 문법을 곱씹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입국심사대의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백인이라면 대부분 환영하는 아시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수많은 유럽계와 캐나다인들도 입국 심사대에 서서 나와 똑같이 세세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해야만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조금은 더 유창한 영어로 약간의 joke 를 섞어서 얘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재미있는 풍경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입국 심사대 맨 끝에 '이민자 통로(Immigration Path)' 가 따로 있어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입국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미국 땅으로 어렵게 이민을 준비하고 드디어 그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작부터 긴 줄을 서서 까다로운 심사관들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민자' 로서의 입국을 허가받을 수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민자의 대부분이 아시아지역(특히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출입국심사를 마치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진정한 미국의 영토에 발을 딛게 된다. 그 때부터 맞이하는 얼굴들은 모두 환하고 밝게 낯선 이국인들을 반긴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의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약 90일. 비자가 만료되는 순간까지 꽉 채우고 돌아가려는 속셈이다.


첫 관문은 샌프란시스코로 잡았다. 미국에 수많은 도시가 있지만, 가장 미국적이지 않으면서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바로 그 곳이다. 100년전 중국 이민자들이 수없이 건너와 희생하며 만든 차이나 타운과 미국의 중산층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곳. 미국 최고의 대학인 스탠포드와 UC버클리가 마주한 이 곳. 전통보다는 창의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가 옆동네인 바로 이 곳이다. 



첫날부터 숙소를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정말 비행기표만 하나 달랑 들고 왔을 뿐이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는 속담은 정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내가 간 시즌이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연휴기간이어서 거리마저 한적한 그런 시즌이었다.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기위해 하루 종일을 걸어다녔다. 지인이 소개한 한인교회를 찾아가보기도 하고,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중국인에게 숙소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길을 묻다가 생전 처음으로 Jewish Synagogue(유대인 회당)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길을 물었던 미국인이 이곳의 직원이어서 컴퓨터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타종교의 사원은 내가 정말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홈스테이나 민박, 저렴한 호텔 그 어느 하나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는데 때마침 다운타운 근처에 나같은 여행객을 위한 값싼 호스텔이 있었다. 


하루에 30~50달러 수준으로 한 방을 여러 명이 나눠써야 하지만 장기 여행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와같은 여행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한가.


첫 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같은 방을 쓰게 된 한국분과 저녁을 먹었다. 출장을 왔다가 하루 더 연장해서 여행을 하려던 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여정은 시작되었다. 






호스텔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묵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호스텔에 장기투숙하는 미국인 알바생부터 나 같이 한국에서 온 단기 여행객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장기여행자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호스텔의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어 친해진 한국분과 며칠을 동행하기로 했다. 


처음이라 관광지위주로 코스를 잡았다. 샌프란시스코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 그리고 영화로도 유명한 알카트라즈 감옥섬, 샌프란 맞은편의 조용한 도시 소살리토와 최고의 크램차우더를 맛볼수 있는 피어까지다. 










많은 여행자분들이 사진이나 자료를 올리셨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서 주로 현지에서의 감상 위주로 글을 쓰려 한다. 


샌프란에서 만난 오랜 형님이 있다. 안지는 10년이 넘었지만 미국 교포여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가 때마침 샌프란에 거주하셔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고 만나게 되었다. 미국에 견학을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미국에서 반드시 봐야하는 도시로 Six Gateway Cities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동부에는 Boston, New York city, Washington D.C. 가 있고, 서부에서는 Seattle, San Francisco, Los Angeles 가 바로 이들 도시이다.  

물론 미국에는 이들 도시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들이 많지만 다 돌아보기에는 어려우니 이 도시들 정도만 보더라도 미국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앞으로의 여정에서 얼마나 볼 수 있을지 몰랐지만 가능하면 다 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컸다. 그만큼 시간을 갖고 돌아볼 수 있는 젊음과 여유가 앞으로의 삶에서 또 언제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샌프란을 이곳 저곳 다니며 느낀 것이지만 미국은 선진국이 확실했다. 다양한 인종에(중국에서도 인종이 다양했지만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미묘한 균형도 느껴졌다.


과거 미국 서부의 대도시들은 동부와 중부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금광을 발견하고 금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험난했던 서부 대개척 시대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고 평온하고 여유있는 서부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노숙자와 빈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조차 좌절과 절망보다는 어렵지만 이런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은연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글이라 너무 띄운 느낌이 나지만, 그만큼 처음의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당시의 벅찬 감동이 생생하다.


감동의 여운을 뒤로하고 Tony Bennett 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를 함께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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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목장 美麗的草原 - 우루무치


우루무치는 이런 뜻이라고 했다.


아마 비지니스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 번 가봐야지 하는 곳이었다.


중국에 10년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다는 핑계로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왼쪽 중간부터 넓은 사막지대를 기반으로 매우 광활한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신장은 중국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하고 있어서 매우 광활한 지역이다. 중국 전체가 대한민국의 약 100배 정도가 되니까 신장만 하더라도 무려 우리나라의 16배 이상이 되는 지역인 것이다. 


우루무치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내릴때는 마치 미국 서부지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드넓은 사막지대에 형성한 도시인 것도 그렇고, 한 국가의 서부를 대표하는 지역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LA도 미국의 westside 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신장은 위구르족 자치구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막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신장 전체 인구를 보면 약 2131만명 중에 한족이 약 41%이고 위구르족이 43%로 위구르족이 약간 앞서는 듯 보이지만, 현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우루무치만 하더라도 약 80% 이상이 한족으로 되어있고, 그나마 있는 위구르족도 대부분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편이라서 여느 대도시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었다.(위키피디아 참조) 


특히 대부분의 정치, 경제 부분에서는 한족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장은 크게 신북(新北)과 신남(新南) 으로 나눈다고 했다. 현지에서 만난 사업 파트너의 친척이 나를 공항에서 마중했는데 호텔까지 가면서 꽤 많은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신북에는 위구르족이 많지 않고, 신남에 위구르족이 많아 현지에 사는 한족들도 신남에는 위험해서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위구르족이 정말 위험하거나 그런것은 아니다. 


우루무치에 며칠 지내는 동안 위구르족들도 다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만 생김새가 한족과는 매우 다르고(동구유럽과 중동사람들이 섞인듯한 모습이다. 카자흐스탄 사람들과도 비슷한 생김새다), 언어역시 위구르언어를 함께 쓰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한다.




<위구르현지 식당 모습, 대부분 양고기 꼬치 등 육류를 주식으로 하고, 

위구르언어를 함께 쓴다>

우루무치는 현재 중국의 일대일로(육로 1개, 수로 1개를 뜻하는 말로, 과거 실크로드의 회복과 해상로를 회복하여 과거의 부흥시대를 재현하겠다는 의미) 정책에 맞물려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를 통과하는 거점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공항역시 이미 터미널 3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우루무치 지역에서 환승하여 동구유럽과 러시아 지역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이 지역은 현재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한 하나의 대륙으로 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거대한 지역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우루무치지역과 이 일대는 정말 역사상 보기 드문 대 변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루무치 현지 택시에 붙어있는 광고, 제 4회 차이나 유라시아 박람회에 오신 것을 환영함>


혹시 우루무치 지역을 방문하신다면 이 식당은 꼭 추천드린다.




<삼교숯불꼬치 본점이다. 三桥烤肉王烤肉王总店>


우루무치에 있는 현지 파트너가 추천해서 데리고간 식당인데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여행온 많은 중국 관광객들은 꼭 한 번씩 들려보는 식당이라고 한다. 양꼬치나 면요리가 특히 맛있는 곳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평생을 다 다녀도 못 다녀볼 나라가 중국' 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중국에 10년 가까이 있었지만 가본 지역보다 못가본 지역이 훨씬 더 많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지역이 중국이다. 


업무상 가지 않았다면 사실 큰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만, 앞으로는 비지니스 차원 뿐 아니라 발전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나갈 도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고 자주 방문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꼭 한 번 기회를 만들어서 가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항공편 : 

대한항공 직항 주 1회 (있다고 하는데 예약이 잘 안되니 전화로 확인하자)

중국 항공기 : 북경, 상해 등 중국 도시를 1회 경유하여 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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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Grand Canyon

 

 

보지 못한 것들의 실상. The Reality of Things never seen before.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며 한국인들과 함께 살지만, 아주 많은 부분에서 미국의 문화를 접하고 살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첫 미국 문화는 바로 '전격 제트작전 키트' 였다. 그 당시 검은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음성인식으로 차를 움직였던 그 미국 드라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브이' 나 '코스비 가족' 등등 수많은 미국 드라마들이 나의 어린시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천재소년 두기와 함께 자랐으며, 600만불의 사나이를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뉴욕에 가면 정말 닌자거북이와 피자조각이 있을 것 같았다. 매주 일요일 아침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디즈니 만화세상' 도 내 어린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봤던 만화들은 나의 인격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듯 하다. 좋든 싫든 어린 시절 봤던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미국문화' 에 대한 친숙함을 가져다 주었다. 

  학교에 가서는 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받았다. 학교의 영어 시간은 '미국 영어' 를 기준으로 교육하였고, WWF(미국프로레슬링), NBA(미국프로농구) 등은 어린 시절의 추억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마이클 조던과 샤킬 오닐, 찰스 바클리 등은 한국의 이상민, 문경은 이상의 인기를 갖고 있었고 ,실제로 그들의 라벨을 갖고 있던 나이키, 리복의 농구화들은 어린 시절 꼭 갖고 싶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중국에 유학을 가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오히려 중국에도 미국의 문화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겠다. 중국에 있던 학생들 조차 미국 유학을 가장 큰 꿈으로 갖고 사는 아이들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속칭 '미국유학반' 이라는 학과가 있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목은 미국의 원서가 아니면 번역본을 사용했다.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왔던 학생조차, '왜 중국의 경영학을 가르치지 않고, 미국의 경영학을 가르치느냐' 라며 수업을 나갔던 일까지 있었다. 

  1) 왜 미국인가?
  
  난 항상 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나 중국처럼 미국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도 있고, 미국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도 많으며, 심지어 미국을 천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칭하는 유럽국가들도 상당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처음에는 미국보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과 상당히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언어인 영어는 원래 영국의 언어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금의 '초강대국' 이라고 불리며 전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너무 궁금했다. 과연 그 이유와 근간은 무엇인지.

  2) 왜 미국으로 가려고 하는가?

 수많은 지인들이 미국에 살고 있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꿈꾼다. 각자의 처한 환경이 다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수많은 가치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에 많은 분들이 총기 소지 가능, 인종 차별, 높은 물가 등을 얘기한다. 다들 맞는 말이며, 나 역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 이민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유효하고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하는가?

 3) 이민자들이 세운 이민자의 나라.

  최근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이제는 '다문화가정' 이라는 말 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우리나라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단일민족 국가였다. 그래서 잘 뭉친다는게 한민족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여부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4) 달러를 가진 소비 대국.

  2천년대에 들어서서 세계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80-90년대와 같은 황금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이용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미국 국민들은 그 달러를 이용해 전세계의 물건들을 소비하고 있다.  이 소비의 대국은 어떻게 형성되어 버린 것인가?

 5) 종교의 박해를 피해 온 청교도의 나라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미국의 종교적 매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에 이민을 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 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실제로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양성을 추구하고 인정한다는 명목하에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되는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성애의 결혼, 이단 종교의 득세, 타종교의 발전, 개신교의 몰락 등이다. 청교도 들의 기도로 세워진 이 땅이 과연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위와 같은 의문점을 갖고 항상 미국을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에 다녀온 후 같은 아시아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심하다면 미국에 꼭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준비한 끝에 드디어 2012년 11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부터 보고 듣고 느낀 진짜 미국을 이야기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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